■ 이호신 화백 기획초대전 ‘어머니의 땅, 지리산 진경 순례’
4월4~28일 아라아트센터 / ‘남원 실상사’ 등 200여점
“인간·자연의 관계에 주목” / 스케치작품 50여점도 전시
지리산이 품은 너른 벌판에 가을이 찾아왔다. 나무의 지난했던 여정은 붉은 빛으로 물들고 황금빛 들녘은 고즈넉함으로 온갖 생명들을 반긴다. 완만한 산자락에서 내려오는 물이 강으로 유유히 흐르면 고동치던 숨결들은 또 다시 찾아올 봄을 기약하며 벌판에 스며든다.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천년고찰 실상사와 지리산의 내밀한 속살은 그렇게 이호신 작가의 손끝에서 이야기로 탄생했다.
이 땅에 깃든 생명과 사람, 사찰과 자연을 화폭에 담아온 불자 미술인 이호신 화백이 4월4~28일 서울 견지동 아라아트센터에서 기획초대전 ‘어머니의 땅, 지리산 진경 순례’를 개최한다. 전시는 지하 1층~지하 4층 780평 공간에서 진행되며 ‘남원 실상사’, ‘구례 화엄사’, ‘하동 쌍계사’ 등 200여점의 작품이 선보일 예정이다.
지리산을 ‘어머니의 땅’이라고 읽는 이 화백은 그곳이 축적해온 방대한 이야기들을 농밀하게 풀어내기 위해 스스로 그 품속에 걸어 들어갔다. 산청 남사예담촌에 자리를 잡고 지리산자락을 누비며 우뚝한 봉우리와 심원한 계곡을 샅샅이 밟았다. 그곳에는 출렁이는 산맥, 우뚝 솟은 봉우리, 기운차게 쏟아지는 폭포, 옥토를 적시며 흘러가는 강이 있었다. 또 천년 고찰과 피와 눈물의 역사적 현장, 위대한 문학과 구성진 전통가락이 있었다. 이 화백은 지리산 속살에 파고들어 아름다움에 탄복며 자기구도와 성찰을 이어갔다.
이 화백은 무엇보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주목했다. 지리산의 겉껍질을 그저 화폭에 옮기는 것이 아니라 머물러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해석했다.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어우러짐을 바라봤다. 사람의 공간은 곧 자연의 숨결이었고, 자연의 숨결은 다시 사람의 생명력이었다.
“민족의 대서사시 지리산에서는 역사의 바람이 불었고 문화의 꽃이 피어났습니다. 유난히 사람과 더불어 사는 산이요 온갖 삶을 다 받아주고 아픔을 삭여주는, 지리산은 그래서 어머니 품속 같은 산입니다.”
이 화백은 ‘어머니 품속’ 지리산의 사람과 자연을 드러내기 위해 담백함을 선택했다. 자연의 변환에 따라 염색 한지를 사용하기도 했으며 강한 묵색을 통해 맑은 생명을 노래했다. 거칠 것 없는 운필과 농담은 자연의 경계를 허물고 시공을 초월한 이상향으로 표출됐다.
미술평론가 김상철씨는 “부감을 이용해 너른 시야를 확보하고 때로는 몽롱한 담묵 속에서 홀연히 드러나는 웅장한 자연의 본질을 표현했다”며 “지리산의 웅자를 화면에 담고 그 속에 내재된 인문과 자연의 연유를 풀어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공간해석의 묘를 확보했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리산을 오르내리며 그곳의 풍경을 담아낸 스케치 50여권도 함께 선보인다. 이 화백은 비가 오고 거센 바람에 날리며 눈이 내리는 중에도 눈앞에 펼쳐진 자연을 사생(寫生)했다. 산세와 지세, 물의 흐름과 그곳에 뿌리내린 수종 등을 여러 방향에서 관찰하고 사생한 후 이를 바탕으로 상상력과 선택에 의해 화폭에 재구성했다. 이처럼 노고가 담긴 스케치의 전시는 이 화백의 세심한 시선과 열정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전망이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특별프로그램으로 4월6일 오후 3시, 4월27일 오후 3시 아라아트센터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한다. 또 4월12일 오후 3시에는 미술평론가 김상철씨가 ‘이호신의 지리산진경, 생활산수’를, 4월20일 오후 3시에는 ‘간송 전형필’의 저자 이충렬씨가 ‘미술 애호가가 본 이호신과 진경산수’를 주제로 각각 특별강연을 개최한다. 입장료 일반 8000원, 학생 3000원. 02)733-1981
– 법보신문 / 김규보 기자 / kkb0202@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