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전설적인 뮤지션을 발굴해낸 독일의 음반 레이블 ECM의 전시 《ECM: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그런 면에 음악 전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음악을 감상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공간 안에 풀어냄으로써 음악에 대해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ECM의 잔향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게 했다. (2013-10-23)
전시장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작품은 페테르 노이서의 ‘콘스탄츠 호수’다. “자연의 소리야말로 가장 오래된 노래의 형태로 수많은 예술의 모델”이 되었다는 만프레드 아이허의 말처럼 이 작품은 마치 호수 앞에 앉아 있는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한없이 밀려드는 물살에 비친 빛을 가만히 목도하는 순간, 음악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다음으로는 ECM의 초기 명반을 모아 놓은 ‘새로운 시작’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청음 박스는 독특한 형태로도 눈길을 끌지만, 빛과 외부 소음으로부터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더욱 매력적이다. 주요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자유롭게 이동해 가며 들을 수 있는 만큼, ECM의 초기 음악의 흐름이나 방향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일명 아티스트의 길이라고 불리는 키스 자렛의 앨범과 공연 실황을 담은 복도를 지나면, 곧이어 ‘ECM 라운지’가 눈에 들어온다. 편안한 쇼파에 등을 기대, ECM 아티스트의 음악을 골라 들을 수 있는 공간이다. 음악에 대해 알든, 알지 못하든 음악을 듣는 그 순간에 집중할 수가 있게 된다. 쇼파 옆 벽면에는 ECM에서 발매한 앨범들이 연도순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ECM의 역사와 볼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이미지였다.
‘마음과 풍경’은 오랫동안 음악과 영상의 흔적이 남을 듯한 섹션이었다. ECM의 앨범 커버 디자인은 심플하면서도, 강한 여운을 남긴다. 그러나 커버 디자인에 대해 “음악을 향한 초대장”이라 부르며, 음악을 소개하는 역할로 국한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섹션에서는 음악과 커버, 다시 영상이 서로 조응하는 순간을 담아낸다.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운 두 개의 스크린 화면 위로 앨범 커버 이미지와 영상이 동시에 등장한다. 이와 함께 앨범의 음악이 동시에 흘러나온다. 이번 섹션의 작업들은 음악이 이미지와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살피면서, 음악이 어떻게 다른 예술과 만나 호흡하는지를 보여줬다.
80, 90년대만 해도 음악을 듣기 위한 공간인 음악 감상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음악 감상실은일을 하거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음악을 듣기 위한 공간이다. 최근에는 어디에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음악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극히 제한적이다. ECM 전시실 안에 구현된 음악감상실은 음악이라는 무형의 언어이자 공기를 만나게 해준다. 스피커와 어두운 조명, 그리고 작은 쇼파에 기대앉아 있으면, 하나의 음악만이 다가오게 된다.
이렇듯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ECM의 음악을 경험하기 위해서 그에 따른 감상 공간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ECM 음악의 일부처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전시가 열린 아라아트센터 내부는 이러한 전시를 구현하는 데 손색이 없었다. 지하 4층에서 지상 1층까지 이어지는 전시장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면 서로 다른 층위의 음악을 만나게 되고, 점차 음악이 퍼져 나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좋은 작품을 보면, 우리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선다. 한참을 들여다보면서 집중하고 그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려 한다. 에서 우리는 자주 멈추게 된다. 이곳에서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은 중요하지 않다. 음악을 듣고, 그 순간을 경험할 때 마주하게 되는 것들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순간은, 마치 예술처럼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음악을 ‘시간 예술’이라고 한다. 음악을 듣는 데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며, 그 시간 동안 다양한 감각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는 굉장히 개인적이며, 각각 느끼는 바가 다르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무형의 음악을 전시한다는 것은 많은 어려움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앨범 재킷을 소개하거나 음악을 연대기 순으로 배열하는 식의 전시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것만으로는 음악을 감상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의 전설적인 뮤지션을 발굴해낸 독일의 음반 레이블 ECM의 전시 《ECM: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그런 면에 음악 전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음악을 감상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공간 안에 풀어냄으로써 음악에 대해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ECM의 잔향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전시 흐름은 전시와 함께 영화제, 마스터 클래스 등 ECM 페스티벌로 확장되면서, ECM이 뮤지션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문화적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ECM이 갖고 있는 특성 때문이다. 키스 자렛, 팻 메서니, 얀 가바렉 등의 아티스트들은 모두 각기 다른 개성을 갖고 있다. ECM의 수장 만프레드 아이허는 다양한 음악을 누구보다 먼저 발견하고, 이를 소개해왔다.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는 전시 제목처럼 ECM 음악이 폭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리고 우리는 음악을 듣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ECM을 만나게 된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전시장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작품은 페테르 노이서의 ‘콘스탄츠 호수’다. “자연의 소리야말로 가장 오래된 노래의 형태로 수많은 예술의 모델”이 되었다는 만프레드 아이허의 말처럼 이 작품은 마치 호수 앞에 앉아 있는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한없이 밀려드는 물살에 비친 빛을 가만히 목도하는 순간, 음악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다음으로는 ECM의 초기 명반을 모아 놓은 ‘새로운 시작’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청음 박스는 독특한 형태로도 눈길을 끌지만, 빛과 외부 소음으로부터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더욱 매력적이다. 주요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자유롭게 이동해 가며 들을 수 있는 만큼, ECM의 초기 음악의 흐름이나 방향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일명 아티스트의 길이라고 불리는 키스 자렛의 앨범과 공연 실황을 담은 복도를 지나면, 곧이어 ‘ECM 라운지’가 눈에 들어온다. 편안한 쇼파에 등을 기대, ECM 아티스트의 음악을 골라 들을 수 있는 공간이다. 음악에 대해 알든, 알지 못하든 음악을 듣는 그 순간에 집중할 수가 있게 된다. 쇼파 옆 벽면에는 ECM에서 발매한 앨범들이 연도순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ECM의 역사와 볼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이미지였다.
‘마음과 풍경’은 오랫동안 음악과 영상의 흔적이 남을 듯한 섹션이었다. ECM의 앨범 커버 디자인은 심플하면서도, 강한 여운을 남긴다. 그러나 커버 디자인에 대해 “음악을 향한 초대장”이라 부르며, 음악을 소개하는 역할로 국한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섹션에서는 음악과 커버, 다시 영상이 서로 조응하는 순간을 담아낸다.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운 두 개의 스크린 화면 위로 앨범 커버 이미지와 영상이 동시에 등장한다. 이와 함께 앨범의 음악이 동시에 흘러나온다. 이번 섹션의 작업들은 음악이 이미지와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살피면서, 음악이 어떻게 다른 예술과 만나 호흡하는지를 보여줬다.
80, 90년대만 해도 음악을 듣기 위한 공간인 음악 감상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음악 감상실은일을 하거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음악을 듣기 위한 공간이다. 최근에는 어디에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음악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극히 제한적이다. ECM 전시실 안에 구현된 음악감상실은 음악이라는 무형의 언어이자 공기를 만나게 해준다. 스피커와 어두운 조명, 그리고 작은 쇼파에 기대앉아 있으면, 하나의 음악만이 다가오게 된다.
이렇듯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ECM의 음악을 경험하기 위해서 그에 따른 감상 공간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ECM 음악의 일부처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전시가 열린 아라아트센터 내부는 이러한 전시를 구현하는 데 손색이 없었다. 지하 4층에서 지상 1층까지 이어지는 전시장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면 서로 다른 층위의 음악을 만나게 되고, 점차 음악이 퍼져 나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좋은 작품을 보면, 우리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선다. 한참을 들여다보면서 집중하고 그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려 한다. 에서 우리는 자주 멈추게 된다. 이곳에서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은 중요하지 않다. 음악을 듣고, 그 순간을 경험할 때 마주하게 되는 것들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순간은, 마치 예술처럼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