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성 아라아트 대표. (사진 = 장해순 기자) ⓒ2012 CNBNEWS
인사동에 새로운 명소가 들어선다. 지하 4층, 지상 5층의 대규모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될 이곳의 이름은 ‘아라아트’다. 총 9개 층에 연면적이 1500평이며 40평에서 180평에 이르는 15개의 전시실로 구성된 건물이다.
이처럼 대규모 문화공간을 조성한 인물은 누구일까, 그리고 어떤 연유가 있을까? 미술계 불황이 지속되는 현시점에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린 주인공 아라아트 김명성 대표를 만나봤다.
“인사동에서만 30여 년을 살아왔어요. 시인은 아니지만 시를 좋아하고 시를 직접 쓰기도 했죠. 어릴 적 꿈이 시인이었어요. 특히 제 주변엔 예술가들이 많았어요. 화가뿐 아니라 음악가, 시인, 배우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었죠. 인사동에 이들이 모두 모인 때가 1980년대 초라 생각해요.”
그의 첫마디에 궁금증을 해소할 만한 답이 들어 있었다. 당시 그는 시인들과 함께 광화문 뒷골목에서 ‘시인통신’이라는 무크지(잡지와 단행본의 성격을 모두 지닌 부정기 간행물)를 만들었다. 이렇게 시인들과 함께 있다 보니 자연스레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나게 됐고 문화예술 전반에 걸친 교류와 경험을 하게 됐다고 한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이 인사동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요. 무엇인가 목적이 있기 때문이겠죠. 인사동은 예술의 거리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사람이 있기 때문에 찾는다고 생각해요. 예술도 예술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인도 함께 하는 거잖아요.”
▲ 아라아트 전시장 모습. (사진 = 장해순 기자) ⓒ2012 CNBNEWS
그는 ‘아라재컬렉션’의 대표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작품을 모으는 컬렉터라는 얘기다. 그가 작품을 수집하게 된 것도 1980년대 중반부터라고 하니 이 또한 만만치 않은 양을 자랑한다. 그가 작품을 수집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준 건 다름 아닌 어린 시절 일기장에 스크랩했던 멕시코 작가 타마이오의 그림이었다고 한다. 그 그림이 가슴 한편에 남아 있었고 그림과 시를 스크랩하던 어린 소년이 시를 쓰는 컬렉터가 된 것이다.
더욱이 예술가들과 어울리다보니 자연스레 그들의 작품을 구입하게 됐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예술가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며 어려움에 처한 예술가들에게 도움을 주고 후원한다는 이유였다. 한술 더 떠 그는 구입한 작품을 다시 작가에게 돌려주기도 했다고 한다. 컬렉션을 위한 구입이 아님을 알려주는 증거다.
인사동에서 30여년 살면서 ‘작가보다 작가의 삶을 더 잘 아는 사람’ 꼽혀
“고암 이응노나 겸재 정선의 그림을 구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을 소장하기 시작했어요. 이후 민화, 도자기, 각종 공예품 등 조선시대 전기부터 말기까지 작품을 고루 갖추게 됐죠. 오랜 시간 그림을 보다보니 자연스레 그림을 보는 안목도 높아졌어요. 그림은 많이 보고 자주 볼수록 안목도 올라가요. 하지만 여기에는 열정도 필요해요. 열정이 있어야 안목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아라아트 전시장 모습. (사진 = 장해순 기자) ⓒ2012 CNBNEWS
30여 년이 넘게 인사동에서 산 만큼 애정이 강한 그는 지난 젊은 시절 인사동에서 문화예술인들과 밤새 예술을 논하고 그들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인사동을 예술의 중심지로 일구는데 애써왔다. 이러한 젊은 날의 경험이란 토대가 있는 가운데 그의 마음 속에는 가난하고 의로운 예술인들을 위해 동방문화회관(경방살롱 문화아카데미)을 세운 청년실업가 김동근 선생이라는 롤모델이 있었다.
그러던 그는 5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준비해 아라아트를 건립하게 됐다. 그 누구도 감히 하지 못한 일을 시작한 것이다. 인사동의 문예부흥을 위한 그의 결단이었다.
당연히 주변에서는 무모한 일이라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온 그에게 두려움은 없었다. 지금까지 뜻을 갖고 일을 해왔다는 그에게 “이번에도 이뤄나가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국내 미술시장의 현실은 어려운 게 사실이에요. 저는 오히려 미술계의 불황을 그대로 두는 게 안쓰러워요. 불황일 때 호황이 온다는 말이 있어요. 하나의 예로 그림은 누구에게 팔아야 할까요? 화가에게 팔아야죠. 그림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니까요. 이처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에요.”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금에 오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는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버리자는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하나를 얻는다는 건 하나를 버리자는 것”이라는 그는 아라아트의 100% 주주지만 ‘1% 주주’가 되고자 한다. 함께 나누고 모두가 주인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지나간 어제보다 다가올 내일만을 생각한다는 그는 “조그만 관심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듯이 미술계 현실의 비판과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함께 갈 생각을 하자”며 조금이라도 미술계에 도움이 되고 인사동의 문예부흥을 위하자는 생각에 묵묵히 앞장서고 있다.
▲ 아라아트 전시장 모습. (사진 = 장해순 기자) ⓒ2012 CNBNEWS
야간개장으로 ‘밤의 인사동’ 연다
복합문화공간 면모 갖춘 아라아트
아라아트의 ‘아라’는 순우리말로 ‘물, 바다’를 뜻하는 옛말이다. 모든 생명의 어머니인 바다처럼 한국 미술계를 든든히 뒷받침하려는 의지와 포용성을 담은 명칭이다.
아라아트는 지하 4층, 지상 5층의 대규모 복합문화공간으로 전시장의 평균 높이가 3.5m이며 가장 긴 전시장은 14m 길이다. 폭넓은 예술장르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지하 4개 층을 관통하는 광활한 자연채광의 아름다움은 전시장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한다.
아라아트의 하드웨어라고 할 수 있는 건물은 콘크리트와 유리로 이루어져 있다. 콘크리트의 검은색은 물을 상징하며 유리의 빛은 곧 아침 바다의 여명을 뜻한다.
무엇보다 아라아트는 한국의 전시 및 대관 문화를 새롭게 창출할 계획이다. 아울러 전시, 공연, 이벤트, 파티 등이 동시에 어우러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인사동의 문화산업 창출과 관광벨트 형성에 기여하고자 한다.
▲ 아라아트 외관. (사진 = 장해순 기자) ⓒ2012 CNBNEWS
큰 규모의 전시장이자 대관 공간으로 새로운 경영기법을 시도해 전시관, 미술관의 패러다임을 바꾸려 한다. 예를 들어 오후 10시까지 야간전시를 열어 직장인에게 문화체험의 기회를 좀 더 제공하며 미약한 인사동의 야간문화를 활성화한다는 목표도 있다. 여기에 작가 중심의 직거래 형식을 제시해 문화의 생산자인 작가들에게 활력과 의욕을 불어넣을 계획이다.
한편 아시아 중심국가로서 한국의 역할 제고에 맞춰 아라아트는 아시아 미술의 세계화, 아시아 미술문화의 르네상스를 꿈꾼다. 그러한 의지의 일환으로 아시아 미술을 대변할 수 있는 대규모 개관전을 9월 19일 연다. 서아시아의 미술을 대표하는 터키(西), 아시아 최남단의 미술을 대표하는 호주(南) 그리고 아시아의 중심부에서 세계 미술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동아시아의 미술을 대표하는 우리나라(東) 등 4개국의 현대미술 전시를 동시에 개최해 아시아 미술문화를 글로벌 문화로 끌어올리는 계기를 만들자는 전시다.
CNB 저널 / 김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