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XHIBITIONS

[인터뷰] 동시대 음악 세공의 장인… 예술적 고집을 전시하다

■ ‘전설적 음반사’ ECM 서울서 페스티벌… 한국 방문한 아이허 대표

만프레드 아이허는 “침묵 다음으로 아름다운 소리가 무엇인지 말하려면 우선 침묵이 무엇인지 정의해야 한다”며 “어려운 일이지만 듣는 사람이 직접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글린트 제공
만프레드 아이허는 “침묵 다음으로 아름다운 소리가 무엇인지 말하려면 우선 침묵이 무엇인지 정의해야 한다”며 “어려운 일이지만 듣는 사람이 직접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글린트 제공

– 키스 재릿·팻 메시니·김덕수 등 재즈·월드뮤직·클래식 등 명반 제작
– “동시대 음악, 모든 예술적 요소 포용”
– “음악을 파일로만 들으면 반은 놓쳐”
– 직접 고른 예술적 앨범재킷 전시
– 신예원 등 ECM서 앨범 낸 뮤지션 공연

독일의 유명 재즈ㆍ클래식 음반사 ECM(Edition of Contemporary Music)의 예술적 가치를 전시, 공연, 영화로 조명하는 페스티벌이 31일 서울에서 시작됐다. 한 음반사를 조명하는 행사가 이처럼 동시에 다각도로 열리는 것은 흔치 않은 일. 음악이 무선 데이터로 소비되는 시대에 변함 없이 세심한 음향과 앨범 디자인에 골몰하고 있는 음악 세공의 장인정신을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컨템포러리(동시대) 음악이라면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다룰 수 있겠죠. 예술적인 요소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음악이 컨템포러리 음악 아닐까요.”

ECM의 설립자이자 프로듀서 만프레드 아이허(70)는 이번 축제의 전시회 장소인 아라아트센터에서 30일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아이허는 키스 재릿, 팻 메시니 등 재즈 연주자들을 진정한 예술가로 거듭날 수 있게 도운 인물이다. 그는 “탐구해보고 싶은 요소가 있는 것만 앨범에 담는다”면서 “시적인 요소와 개인적인 표현이 담긴 음악, 진실하고 독창적인 음악이라면 어떤 장르이건 관심을 갖는다”고 했다.

1969년 독일 뮌헨에서 설립된 ECM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상주 직원이 20명 미만일 정도로 작은 규모의 독립 레이블이다. 사실상 아이허의 개인 회사에 가까울 만큼 ECM의 이름으로 나온 2,000여개의 앨범에는 그만의 까다로운 취향이 반영돼 있다. 독일 남부에 위치한 호수 위 작은 도시에서 나고 자란 환경,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 클래식을 공부하며 쌓은 탐구 정신, 1960년대 미국 재즈로부터 받은 영감이 그의 취향 안에 공존한다.

ECM의 모토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이 음반사가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설명해 준다. 재즈가 출발이지만 미국 재즈의 역동적인 리듬은 ECM의 음악에서 찾아 보기 힘들다. ECM의 음악은 고독한 구도자의 여정과 다를 바 없다. 정적의 세계에서 나온 음들이 고요와 조화를 이루며 마음의 풍경화를 소묘한다. 풍경화 속의 그림은 밤길의 적막함이거나 자연의 추상이거나 마음 속의 파노라마 또는 새로움을 찾아 나선 예술가의 전위다.

“내가 들은 방식 그대로 전달하는 게 유일한 목표였습니다. 어릴 땐 실내악을 많이 들었는데 실내악 같은 재즈를 연주하는 연주자를 발굴하고 싶었어요. 운 좋게 폴 블레이, 키스 재릿, 칙 코리아 같은 미국 연주자들과 같이 작업할 수 있었죠.”

ECM의 음악은 미국의 재즈에 유럽인의 삶, 예술을 녹여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재릿과 메시니, 코리아, 블레이 외에 존 에버크롬비, 찰리 헤이든, 랄프 타우너 등이 ECM에서 앨범을 냈고, 이들과 교류했던 스칸디나비안 재즈의 선두주자들인 얀 가바렉과 테리예 립달, 보보 스텐손 등도 자신들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재릿은 ECM을 가리켜 “예술가적인 진실성이 있는 최고의 음반사”라고 했다.

재즈에서 월드 뮤직으로, 또 클래식으로 관심사를 넓히며 ECM은 이름 그대로 현대 음악의 선봉장이 됐다. 한국의 김덕수를 비롯해 아르헨티나의 디노 살루지, 튀니지의 아누아 브라헴, 브라질의 나나 바스콘셀루스 등의 재능이 ECM을 타고 전 세계에 소개됐다. 1984년 아르보 패르트의 ‘타불라 라사’로 시작한 클래식 계열의 ‘뉴 시리즈’는 소리의 마술사로 불리는 메러디스 몽크, 현대음악 작곡가들인 존 케이지와 스티브 라이히, 정통 클래식 연주자인 하인츠 홀리거와 안드라스 쉬프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ECM의 앨범은 미술 작품 같은 재킷 디자인으로도 유명하다. 콘트라스트가 강한 흑백 사진, 추상화에 가까운 풍경 사진, 미니멀한 추상화, 단색 배경 위에 글씨만 쓰인 단순한 이미지가 주로 쓰인다. 커버도 아이허가 직접 고른다. 아날로그 시대부터 음악을 들었다는 그의 예술적 고집이다.

“카세트 테이프의 포장지를 뜯어낼 때 나는 소리와 재킷에서 레코드를 꺼낼 때의 느낌, 턴테이블의 카트리지 바늘이 LP에 닿을 때 나는 잡음. 이 모든 것이 다 음악적 경험입니다. 그걸 다운로드 받은 파일로만 듣는다면 제가 전하고 싶은 많은 것을 놓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앨범은 하나의 종합적인 예술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ECM 페스티벌

■ 전시회-ECM: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

ECM이 발표한 주요 앨범 커버와 관련 사진들을 전시한다. 일부 앨범들은 직접 들어볼 수도 있다. 11월 3일까지 아라아트센터. (02)6245-6372

■ ECM의 재즈 명반인 ‘키스재릿-쾰른콘서트’ECM 뮤직 페스티벌

3~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IBK챔버홀에서 열린다. 최근 한국 재즈 가수 중 최초로 ECM에서 앨범을 낸 신예원과 재즈 기타리스트 랄프 타우너의 3일 공연으로 시작한다. 비올리스트 킴 카시카시안(5일), 노마 윈스턴 트리오(6일)에 이어 7일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와 오보이스트 하인츠 홀리거가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협연한다. 1544-1555

■ ECM영화제: ECM과 장 뤼 고다르

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프랑스 영화의 거장 장 뤽 고다르의 ‘누벨바그’ ‘영화사’ 등을 비롯해 ECM에 관한 다큐멘터리 ‘사운드 앤 사일런스: ECM 이야기’까지 총 12편을 상영한다. 02)741-9782

– Article/Photo: 한국일보 / 고경석 기자 / kave@hk.co.kr
– Thumbnail Photo : 뉴시스 / 최동준 기자 / photocdj@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