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고 고단한 삶… 자유를 찾아 떠나다
“리얼리스트가 되라,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가져라!” 휴머니스트 혁명가의 아이콘이 된 체 게바라가 남긴 어록이다. 쿠바는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검은 베레모를 쓰고 강렬하지만 우수에 찬 눈빛으로 먼곳을 응시하고 있는 한 남자는 내 머릿속의 아우라가 됐다. “네가 항상 부조리에 분노한다면 너는 곧 내 동료다”라고 했던 그 남자가 나를 쿠바로 이끌었다. 서울을 떠나기 전 모나리자 다음으로 세계에서 복제가 가장 많이 된 이미지인 체 게바라 사진을 찍은 쿠바의 사진작가 알베르토 코르다를 작품으로라도 만나게 됐다. 코엑스의 코르다사진전에서였다. 코르다는 대문호인 헤밍웨이와 피델 카스트로, 그리고 사르트르, 아바나 혁명 광장 등의 사진도 남겼다. 1950∼60년대 쿠바의 패션, 광고 사진을 찍었던 진보적인 사진작가였다.
코르다가 누볐을 아바나 골목길을 걸었다. 시가를 피우는 여인네들이 보란 듯 시야에 들어 온다. 사진을 찍는 이에겐 그냥 지날칠 수 없는 풍경이다. 퇴락한 건물과 거리의 고물차들, 그 곁을 서성이는 이들 모두가 시간을 거스르는 듯하다. 거대한 세트장이다. 사람들의 눈망울은 왜 그리도 해맑은지, 가진 것이 적은 이들에게 오히려 충만이 있음을 보게 된다. 가짐은 욕망이라 했지 않은가. 감성의 사치라 해도 좋다. 여행은 어차피 그런 맛을 누려보는 호사가 아닌가.
골목 어귀 저만치서 한 어린아이가 얼굴을 문밖으로 살짝 내민다.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과 경계의 눈빛이 역력하다. 코르다가 혁명 직후 광고회사의 요청으로 시골사람들의 사진을 찍으러 나섰다가 마주친 한 어린 소녀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소녀는 카메라를 무서워하며 안고 있던 나무토막에게 “울지마 아가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상히 여긴 코르다는 소녀의 부모에게서 딸에게 인형을 사 줄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정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코르다가 사회 현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고 한다.
코르다의 가감없는 카메라 앵글의 출발점이 됐다. 그의 사진엔 혁명 당시 쿠바 사람들의 고단하고 지친 삶이 여과없이 담겨져 있다. 혁명광장에 연설을 듣기 위해 구름떼처럼 몰린 청중들 속에서도 고개를 가누지 못하고 잠에 취한 사람의 모습을 잡아내고 있다. 한국인들이 첫발을 디뎠다는 마탄사 인근의 테라사 해변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 일행은 석양의 노을에 파묻혀 밭일을 마무리하고 있는 한 농부를 보게 된다. 먹잇감을 앞에 둔 사자처럼 나는 카메라셔터를 날렵하게 날렸다. 고단한 삶의 모습이지만 코르다가 그랬듯이 그 너머의 울림을 담아내고 싶었다.
나는 코르다의 사진 철학에 동의한다. 쿠바의 사람과 풍경이 그렇게 만들었다. “갑자기 자신을 슬프게 하거나 즐겁게 하는 무언가를 보고 셔터를 누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무언가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사진작가입니다.” 가슴으로 셔텨를 작동시키라는 엄숙함이 있다.
코르다는 스스로에게 당당했다. “나는 경제적인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사랑한 것을 위해 내 삶 전체를 바쳤다.”
사진작가에게 쿠바여인은 매력적이다. 몸의 곡선과 풍만함의 조화는 욕심을 부리게 만든다. 하루종일 아바나 골목을 누벼도 지루하지가 않다. 카메라에 연인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온다. 아예 몇명의 여성들을 여행기간 내내 전속모델로 채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다. 코르다가 왜 그토록 여인들의 사진에 집착했는지 알 것만 같다.
코르다는 쿠바의 톱모델 노르카와 결혼까지 했다. 혁명이 성공한 후 한동안 광고사진이나 패션사진은 돈벌이가 못됐지만, 코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 사진을 포기한 적이 없다. 마땅한 모델이 없을 땐 그는 혁명광장 등의 집회에 나가 여성을 물색해 찍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 있어도 마음에 드는 여성을 놓쳐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사진을 시작한 이유를 “아름다운 여인을 마음껏 많이 만나기 위해서”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던 코르다는 “여성의 아름다움만큼 혁명을 이끄는 이들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다”며 “혁명에 투신한 사람들의 아름다움은 미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것”이라고까지 설파했다. 그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상업사진과 기록사진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었던 이유다. 그에게 사진은 메시지였다.
코르다는 노르카 이외에도 여러 명의 연인이 있었다. 2001년 사진전이 열린 파리에서 72세의 나이로 숨진 순간에도 한 여인과 함께였다. 곁에는 입을 떼지 않고 마시던 럼주와 22살의 젊은 쿠바 여인이 있었다. 사인은 심장마비다. 이 같은 사실을 전해들은 피델 카스트로는 “역시 코르다다운 죽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코르다에게 여성만큼 큰 메시지는 없었던 것 같다. 아름다운 여성 사진에 대한 열정은 그가 잠드는 순간까지 꺼지지 않았던 것이다. 50여년이 지난 요즘 시각으로 봐도 전혀 촌스럽지가 않다. 세련된 구도와 흑백의 미학은 짜릿한 전율감마저 준다.
사진에서 구도는 시작이자 전부라 할 정도로 중요하다. 코르다는 가장 좋은 구도를 위해 높은 전봇대에 올라가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장화를 신고 물 위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심지어 해양사진으로까지 관심 범위를 자연스럽게 넓혀갔다.
쿠바는 사진가를 미치게 만드는 것 같다. 살사의 리듬이 그렇고 에메랄드 같은 하늘과 바다가 그렇다. 모든 것이 시리도록 가슴에 젖어 든다. 소 같은 눈망울들은 또 하나의 마음속 앵글이 된다. 보는 이마저 선하게 만드는 눈빛이다.
아바나 외곽을 카메라를 들고 서성여 보았다. 때마침 하굣길의 아이들이 마차를 타고 지나간다. 나의 어린시절의 모습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때는 소달구지였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마부가 속도를 늦춰주며 사진을 찍도록 배려를 한다.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환성을 질러대며 카메라 속으로 들어왔다. 그것도 여러번 반복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그냥 그것이 좋은 것이었다. 유년기의 내 모습이 그들의 얼굴에서 어른거렸다.
아바나=글·사진 김영재(사진작가)
– 세계일보, 김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