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사용하는 판화 장르 독보적
‘나무에 새긴 30년전’ 10일부터 열어
민중미술서 농촌풍경 묘사로 전향
“국내시장 침체 아쉬워”… 외국서 더 인기
김준권 화백 판화인생 30년 조명
“우리나라만 그래요. 미국, 중국, 일본 등 다른 나라는 다 판화 장르가 살아있습니다. 중국은 중산층이 뛰어들면서 판화가들이 에디션(한정된 수로 제작되는 작품) 찍어내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입니다.”
지난 5일 충북 진천 작업실에서 전화를 받던 그의 목소리가 한껏 올라갔다. 국내 판화시장이 죽었는데도, 왜 판화가의 길을 고집스레 걷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대목에서였다. 김준권(58). 판화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잉크(유성)로 찍는 판화가 아닌 전통 먹을 사용하는 수묵(수성) 판화를 하는 작가는 그가 거의 유일하다.
김준권의 화업 30여년을 총정리하는 회고전 ‘나무에 새긴 30년’ 전이 10일부터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린다. 1982년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전교조 활동을 하다 해직된 이후 민중미술을 하면서 판화를 시작했다. 작품 세계는 변화해왔다. 치열한 작가정신의 산물이다. 엉겅퀴, 지도, 십장생 등을 소재로 민중 판화를 하던 그는 충북 진천으로 낙향한 걸 계기로 90년대부터 농촌 풍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그렇듯이 잉크(유성목판)로 찍었다.
“먹으로 하는 우리 전통 방식을 왜 쓰지 않냐?”
미술계 선배가 툭 던진 말에서 방향성을 찾은 그는 이른바 수묵 판화의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명맥이 끊어지다시피한 수묵 판화 기술을 복원하기 위해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를 무시로 찾아갔고, 90년대 중반에는 중국과 일본에 유학을 가서 기술을 배웠다.
2000년대 들어 수묵 방식을 사용한 그의 풍경에서는 판화임에도 불구하고 산수화의 맛이 나기 시작했다. 시적 여운이 있다. 칼칼한 선 맛이 아니라 면이 주는 넉넉함이 있다. 목판도 적시고, 종이도 적셔 찍어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작가의 예술성이 발현이 되는 것이다.
김준권이 독보적인 또 다른 이유는 그가 대작을 한다는 점이다. 서양의 석판화-동판화라면 어림없다. 목판화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 전시에도 폭이 2m, 3m가 넘는 대작이 다수 나온다.
다색 판화라 찍고 말리는 작업을 반복해야 해 한 작품에 한달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대작은 혼자서 찍는 게 불가능해 숙련된 조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대작을 찍을 때는 아예 중국 텐진의 공방으로 가서 작업을 한다. 그는 “노동력에 비해 소득이 적은 일”이라며 웃었다.
김준권이 귀한 건 판화시장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오히려 공격적으로 작업을 한다는 사실이다. “뭐에 홀린 거지요. 판을 한번 뒤집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구요.”
이번 전시기획자 윤범모 가천대 교수는 김준권의 판화인생을 ‘우공이산(愚公移山)’에 비유했다. 국내 수요자들은 외면하는 판화의 가치를 외국사람들이 더 알아본다. 그는 “2년 전 아이폰에 전자도록을 실었는데 이를 보고 영국 호주 등 외국에서 문의가 오고 판화를 사간다”고 말했다. 전시는 29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